arrow_back출판 이야기
책 만들기2026년 9월 6일

물어보려다 만 이야기

부모님 살아오신 이야기, 언젠가 들어야지 하면서도 못 여쭤보는 이유에 대해.

부모님 살아오신 이야기를 언젠가 들어야지, 생각만 하고 몇 해가 지났습니다.

명절에 다 모였을 때 물어봐야지 했는데 그날은 정신이 없었고, 병원 모시고 갔다 오는 차 안에서 꺼내볼까 했는데 피곤해 보이셔서 그만뒀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낄 때, 아 이러다 늦겠구나 싶습니다.

막상 여쭤보면

큰맘 먹고 물어봤습니다.

"아버지 살아오신 이야기 좀 해주세요."

돌아온 답은 이랬습니다.

"뭐 별거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전쟁 끝나고 태어나서 그 시절을 다 지나오신 분인데 별게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라도 그렇게 답했을 것 같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해달라니. 어디서부터요. 육십 년을 무슨 수로 한 번에 말합니까.

어색해서 못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운 것도 있습니다.

평생 그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밥 먹었냐, 별일 없냐, 몸은 괜찮냐. 그게 우리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인생을 물으려니 서로 어색합니다.

녹음기를 켜고 마주 앉는 그림을 상상하면 더 못 하겠습니다. 무슨 취재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실 겁니다. 아들딸이 왜 이걸 묻는지. 그 마음이 뻔히 보여서 더 쑥스러우신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건 술술 나옵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질문에는 답이 바로 나옵니다.

"엄마 첫 월급으로 뭐 샀어?"

그러면 사과를 샀다느니, 아버지 내복을 샀다느니, 그 돈이 얼마였는지, 그때 다니던 공장이 어디였는지, 같이 일하던 순자 언니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큰 질문에는 입을 닫으시는데, 작은 질문에는 이야기가 딸려 나옵니다.

  • 첫 월급으로 뭐 사셨어요
  • 어릴 때 집 앞에 뭐가 있었어요
  • 학교 가는 길 멀었어요
  • 제일 친했던 친구 이름이 뭐예요

이런 건 물어보기도 덜 어색합니다. 인생을 말해달라는 게 아니니까요.

한 번에 다 안 해도 됩니다

작정하고 앉아서 다 들으려니까 시작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명절에 한 가지, 통화하다 한 가지. 그렇게 몇 번이면 꽤 모입니다. 순서가 뒤죽박죽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어제는 60년대 이야기, 오늘은 90년대 이야기여도 나중에 정리하면 됩니다.

사진첩을 펼쳐놓고 물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건 언제 찍은 거예요?" 한마디에 그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받아 적으려 하면 대화가 자꾸 끊깁니다. 휴대폰 녹음만 켜두셔도 됩니다.

늦었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이런 글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안 하면 늦는다고.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못 한 사람 마음만 무겁게 합니다.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게 아닙니다. 다들 살기 바빴고, 어색했고, 언제 해도 되는 줄 알았을 뿐입니다.

저도 아직 다 못 들었습니다. 다음에 통화하면 첫 월급 이야기부터 물어볼까 합니다.

필그레이북은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051-637-5697 또는 자주 묻는 질문을 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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